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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Culture

어미의 산, 지리산 자락을 따라, 1박 2일 남도 여행 (1부)

 

 

바다를 끼지 않는 길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다. 나무와 숲에 기대 장엄한 밀물의 감흥 따윈 없을 거란 결론이었다. 성급한 판단이었나. 담양과 구례, 함양으로 연결된 남도의 안쪽은 가을이 다리를 놓고, 겨울이 마중 오는 계절의 급물살이었다. 지리산이 포옹하는 드라이브. 참 포족했다.

 

~담양 소쇄원

  

“가야 할 가치가 있는 곳에 닿는 지름길은 없다.” – 비버리 실즈(미국 오페라 가수)

 

 

 

차는 엉뚱하게 담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소쇄원이다.

지리산 근방이라고 하기엔 80km도 족히 넘는 곳이었다.

언젠가 사는 게 안쓰럽다고 여길 때 찾았던 곳이다. 그해 여름의 소쇄원은 소리로 기억되었다.

광풍각의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대숲이 마음을 빗어 내리듯 청명하게 요동쳤다. 겨울의 문턱, 다시 소쇄원에 섰다.

  

 

소쇄원은 1530년경 은둔한 조선시대 선비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별서정원이다.

풀이하자면, ‘맑고 깨끗한 정원이다.

당대 가사 문학의 대가가 여기 모두 모였다. 정철, 송시열, 송순 등 풍류와 사유엔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사랑한 건 지금도 있다.

대숲을 시작으로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의 고목과 계곡을 눈 밑에 둔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 등 팔작지붕집까지.

세파에 높은 벽을 치는 자연 한가운데에서, 여행객은맑고 깨끗한자신과 마주한다.

늘 그랬듯 사랑채 같은 광풍각에는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제월당의 48(양산보의 사돈인 김인후의 시) 중 제44영인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映壑丹楓)’을 그렸을 것만 같은 자리다.

오색 고목이 눈동자를 물들이고, 바위 사이로 낙엽을 실은 계곡 소리에

대숲이 메아리친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계절을 붙든 여러 이파리가 하늘에 수를 놓고 있다.

소쇄원의 가을은 계절이 변하는 소리를 눈으로 보여준다.

마음은 비워지고, 그 자리를 채울 여행에 나설 시간이 되었다.

  

개관 오전 9~오후 7     문의 061-382-1071, www.soswaewon.co.kr

 

 


 

 

 

 

 담양 소쇄원~구례 화엄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당신이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면.” – 오르한 파묵(터키의 작가)

 

 

 

화엄사로 가는 길, 내비게이션은 섬진강에 편향되게 맞췄다.

호남고속도로로부터 곡성으로 진입해 17번 국도를 따라 섬진강 물줄기가 안배하는 길이다.

3개의 도, 12개의 군에 드리운 섬진강은 농익어 살이 쪘다.

봄이면 매화꽃이 피었을 자리에 오색 나무가 몸을 세웠다.

화엄사에 가까워진다는 걸 알았다.

운무가 낀 산의 능선이 제법이었고, 나무색의 명암이 짙어졌다.

우리가 간 게 아니라 지리산이 그렇게 왔다.

 

 

 

화엄사는 들어가기 전부터 걸음에 제동을 걸었다. 방문교(方文橋) 위아래로 펼쳐진 계곡과 숲의 절경 때문이다. 이 숲은 지리산 천왕봉 방향의 32.5km 산길로 유혹한다.

지리산 자락, 그 품에 안긴 사찰임을 뽐내듯 말이다. 화엄사는 백제 성황 22(554)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방문교를 넘어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면 안주인인 대웅전(大雄殿)과 각황전(覺皇殿)이 있는 경내까지 연결된다. 서서히, 그리고 깊숙이 계단으로 올라야 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그러하듯 화엄사도 대웅전보단 각황전에 시선이 쏠린다.

대웅전보다 좀 낮게 배치했음에도 국내 최대 규모를 감출 순 없었나 보다.

이 터에 있던 장육전(丈六殿)의 화엄경(華嚴經)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거로 알려졌다.

 

 

 

 

 

 

 

 

각황전은 겉만 봐도 목조 기와집의 웅장함과 단정함을 집약했는데, 안이 더 멋스럽다.

통기둥으로 지탱하며 층을 없앴다. 우물 정()자로 된 천장의 아름다움에 반해 뒷목이 뻐근해질 정도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각황전 앞 석등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이나 섬세한 조각에 마음이 뺏긴다.

예불을 준비하는 외국인 승려가 바쁜 걸음이었다.

대웅전 뒤로 봉긋하게 솟은 지리산의 절개가 흘렀다.

크지만 겸손하고, 깊은 속을 지닐 것.

이 화엄사에서 배웠다.

 

문의 061-783-7600, www.hwaeomsa.com

 

<2부에서 계속...>

 

<LG이노텍 사보 "소통공감" 11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