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구례 사성암
“만일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면, 어느 길이든 널 거기로 데려다줄 것이다.”
– 조지 해리슨(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애초에 무언가를 보러 떠난 여행은 아니었건만, 사성암만큼은 꼭 만나고 싶었다.
언젠가 사진으로 먼저 접한 사성암이었다.
사성암은 연기조사가 본사 화엄사를 창건한 뒤 건립한 사찰이다.
그 명칭은 이곳에서 수도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4명의 고승으로부터 유래했다.
절벽 위 아슬아슬하게 걸린 사찰. 그 절벽은 해발 530m 오산(鼇山)의 것이었다.
그가 내려다볼 시야에 우릴 데려다 놓고 싶었다.
실제 감상은 사진보다 더 크고 감격스럽다. 카메라란 얼마나 무기력한가.
사성암은 여느 사찰처럼 번듯한 마당이 없다.
법당으로 오르거나 올려다봐야 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오산에 기대거나 숨어 있다.
약사전(藥師殿)의 왼쪽 계단으로 소원바위에 올랐다.
지금의 사성암은 ‘소원이 이뤄지는 사찰’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위 앞 노랑 쪽지는 누구나 같은 소원이 적혔다.
그를 등지면, 차 안에서 본 근거리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묘하고 벅차다.
퍼즐처럼 조각난 풍경이 하나로 모였다.
섬진강의 물줄기가 열매를 맺은 구례읍과 곡성평야는 유난히 기름졌다.
그 마음, 그 광경을 너무 오래 품었나 보다.
낮의 실낱같던 빛이 밤의 조명에 성급히 자리를 넘겨주고 있었다.
마음이 이러한데, 어찌 당신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까.
문의 061-781-4544
구례 사성암~함양 지안재
“인생은 늘 완벽하지 않다. 마치 길처럼 여러 굽이가 있고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 아미트 레이(인도 작가)
함양에서 눈을 떴다. 지리산 노고단 근방에서 숙박할까도 생각했지만,
법화산과 삼정산, 창암산의 삼각지대인 함양의 마천면에 짐을 풀었다.
1023번 국도가 지나는 길이다.
담양 소쇄원을 우선한 나머지, 계획대로라면 구례에 있는 지리산 노고단으로
다시 넘어가야 하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좀 둘러가면 어떠랴. 고작 10여 개의 가구가 한 마을을 이루는 산골 풍경은
수묵담채화였다. 관광버스도, 대중음식점도 없다.
샛노란 다랑논 사이로 아궁이에 땐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도재 휴게소는 1023번 국도에서 가장 높이 있다.
해발 773m에서 지리산의 11개 봉우리를 조망할 명당을 내어주지만, 안개가 끼면
장사 없다. 그 날의 풍경은 무시무시한 백지상태였다. 이 길에서 함양읍으로 내려가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된 지안재가 있다. 능구렁이가 아스팔트가 되어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를 잇는다. 6번의 급커브는 힘 좋은 SUV도 낑낑댄다.
옛적 내륙 사람은 이 고개를 넘어 남해 사람과 물물 교환을 하는 장터목에 갔다.
국도의 길 이름은 ‘지리산 가는 길’이다. 드디어 지리산으로, 핸들을 꺾었다.
지안재~지리산 노고단(성삼재 휴게소)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돌아오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 이외수
오도재로부터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3단계다. 천왕봉로와 지리산로, 그리고 노고단로다.
이 길의 특징은 갓길도 아닌 도로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정체란 점이다.
‘불법주차 금지’란 경고문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만큼 예쁘다. 가을 나무들이 기뻐서 소리치고 있다.
창문을 내렸다. 가을 냉기와 냄새가 서둘러 달려왔다.
노고단로는 찌그러진 S자로 구불구불 차가 닿을 수 있는 최전방인
성삼재 휴게소까지 이어졌다.
노고단은 지리산으로 오르는 가장 ‘만만한’ 목적지다.
휴게소에서 2.8km 거리, 게으름을 피워도 왕복 3시간이면 된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이 만만한 산은 벌목과 쓰레기로 할퀴고 짓밟혔다. 이후 지리산은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 안식년을 맞았다.
그 후 둥근이질풀과 산오이풀 등 아리따운 식물도 쑥쑥 컸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날의 지리산은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조차 안개에 가려져 하반신만 둥둥 떠다니고, 카메라 속엔
나무와 안개의 흑백 사진뿐이었다. 그리고 산은 역시 산이었다.
아직은 오색 가을에 맞지 않는 매서운 겨울 날씨였다. ‘구름 속의
산행’ 외엔 별다른 말이 필요 없던 길, 수십 번 되돌아가려는데
걸음이 앞서던 길. 누군가 지리산은 멈출 수 없는 산이라 했다.
참 힘없이 나무 데크를 올랐다. 어떤 끌림으로 노고단 고개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정상에 가까워질 즈음이다.
순식간에 하늘이 열렸다. 몽환인가. 구름이 슬슬 물러나는 것 같더니,
빛이 구름을 찢고 나왔다. 발아래 풍경은 보일락말락 숨바꼭질을 했다.
운무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면, 숲은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다.
고되게 오른 딸과 아들을 품는 것인가. 누군가 지리산은 어미의 산이라고도 했다.
하산하는 늦은 오후, 여전히 오르는 이가 많았다.
지리산에 부름을 받은 이들이다. 여행의 힘은 이런 게 아닐까.
비어내고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 기분이 드는 일.
그 힘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으므로.
<LG이노텍 사보 "소통공감" 11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