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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옛길을 걷다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한양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요충지로 조선후기의 역사가 담겨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성곽길을 따라 등산을 하기에도, 울긋불긋 단풍 구경을 하며 산책하기에도 좋은 나들이 장소다.

 

 

 

 

 

 

 

 

 

 

 

 

남한산성 여행은 보통 행궁이 자리한 산성로터리에서 시작된다.
아직은 햇빛이 뜨거운 9월이라 조금 더 선선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은 수도권에 위치한 최고의 역사체험 여행지이지만,
봄에는 벚꽃여정으로 가을에는 단풍구경으로도 탁월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행궁의 정문인, 한남루를 거쳐 여러 개의 문을 통과하면 행궁에 다다른다.

 

원래 완전히 붕괴된 상태로 남아 있었던 한남루가 지금의 반듯한 모습으로 원상복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 덕분이다. 조선 주재 프랑스 영사였던 이폴리트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1892년에 찍은 사진은 한남루를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행궁이란 왕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할 때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조선시대 행궁 20여개 중 남한산성행궁, 북한산성행궁, 강화행궁 등이 전란을 대비해 건립한 곳으로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해 47일간 항전했다.

 

 

 

 

 

수어장대는 산성 축조시 지어진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경기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조 2~4년(1624~1626) 사이에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병자호란 때 인조가 친히 수성군을 지휘하며 청태종의 12만 대군과 대치하며

버티던 곳이다. 항전 47일만에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기도 했다.

 

행궁에서 남한산성 상징인 수어장대로 가려면 약 20분 정도 산길을 올라야 한다. 경사가 다소

가파르기도 하지만, 잘 닦인 등산로 덕분에 그렇게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혹은 산성로터리에서

출발해 수어장대를 지나 다시 로터리로 돌아오는 등산코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산성로터리-북문(0.4km)-서문(1.1km) -수어장대(0.6km)-영춘정(0.3km)-남문(0.7km)-산성로터리(0.7km)의 60분 코스, 산성로터리-영월정(0.4km)-숭열전(0.2km)-수어장대(0.6km)-서문 (0.7km)-국청사(0.1km)-산성로터리(0.9km)의 80분 코스로 2가지가 있다. 어떤 길이든 높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더없이 청량감을 더해주는 기분 좋은 산책 코스다.

오르는 길은 힘들지만, 나무가 우거진 푸른 숲에서 산림욕을 하니 기분까지 상쾌해지는 듯하다.

 

 

 

연무관은 남한산성을 지키던 군사들이 무예를 훈련하던 곳으로 1624년에 지어졌다.
처음엔 연무당이라 불렀으나 숙종이 연병관이라고 쓴 현판을 하사한 이후부터 연병관 또는 연무관이라고 불렸다. 연무관은 문과, 무과 시험을 보는 공개적인 시험 장소로 사용했고 특히 무기 시연은 물론 주조, 야조 등의 군사훈련을 거행했던 곳이다. 늠름한 연무대 앞에서 군사들을 호령했을 지휘관의 우렁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직은 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걷느라 지친 두 다리를 쉴 겸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보았다. 이 느티나무는 약 500년이 넘은 것으로 지름 7m, 높이 23m로 연무관의 위용을 더욱 멋지게 해준다.

 

 

 

 


연무관을 지나니 작은 연못, 관어정이 눈에 들어온다.
순조 4년(1804년)에 만들어진 연못으로 지수당과 마주하고 있는데, 작은 배로 왕래했다고 한다.
관어정 바로 옆에 지수당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는 현종 때 만들어진 것이다.

 

 

 

 

 

 

 

남한산성 행궁 종루 앞에 버스정류장과 음식점 사잇길로 내려가면 천주교 순교자 현양비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애박해(1781)때부터 신자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되어 있었다는

전승이 있으며, 1801년 이곳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나왔다. 이후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자들이이곳에서 순교하게 되었다고. 이후 순교자들의 정신을 전하고자 비를 세웠다고 한다. 순교자 현양비 맞은 편에는 한옥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1999년 순교성지로 선포된 곳으로 기해박해와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한덕운 순교자를 비롯한 순교자 300여명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간 보았던 성당과는 다른 이미지의 멋스러운 한옥 건물이 인상적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이 구절을 들어본 적이 있을 터. 조국을 사랑하는 님에 빗대어 시를 쓴 만해 한용운 선생의 기념관이
남한산성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전시관, 교육관, 야외 조각공원 등으로 꾸며져 있는데 '님의 침묵' 초간본도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만해와 효동 임환경 효당 최범술’ 스승과 제자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역사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남한산성. 이곳 저곳의 건축물들을 보며 조선후기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긴 문화유적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가을단풍이 남한산성을 물들일 때 즈음, 가족들과 함께 다시 이곳을 찾아오기로 다짐했다. 한 상 가득히 차려진 백숙으로 배도 두둑이 채우고 말이다.
(사진 출처 : 광주남한산성문화제 공식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