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주는 AI. 현재 AI는 산업 전반에 다양한 방법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팩토리, 챗봇, 가상 비서 등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었으며, 미래 기술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기술도 AI이죠.
AI는 주로 인간이 하기 어려운 일이나 힘든 일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복잡한 계산이나 방대한 양의 데이터 처리, 자동화 등이 해당하는데요. 그런데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예술 분야에서도 AI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면 어떨까요?
최근 AI는 음악, 미술, 소설,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여 예술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AI 예술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찬반 의견이 따르고 있습니다. AI가 하는 예술을 예술로 볼 수 있느냐가 주요 쟁점인데요. AI가 만든 작품을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고도화된 데이터 조합에 불과할까요? 논란과 화제의 중심, AI 예술을 탐구해보겠습니다.
AI 예술, 어디까지 왔을까?
우선 ‘AI’와 ‘예술’이 함께 쓰일 수 있는 단어일까 하는 원론적인 궁금증이 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AI는 과학의 영역이고, 예술은 예술가 고유의 가치관과 기법이 담긴 작품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술가가 된 AI는 과연 인간 예술가 못지않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을까요?
AI 음악
AI로 만들어낸 가상인간이 CF나 드라마 카메오에 등장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상인간 한유아는 다양한 연령대 수백 명의 목소리 데이터를 취합한 뒤 AI로 합성하여 만들어낸 고유의 목소리로 음원까지 발매했다고 알려졌어요. 과거 사이버 가수 아담은 목소리를 대신한 가수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상상 이상의 발전입니다.
AI는 노래뿐만 아니라 작곡 또한 도맡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초 AI 작곡가 이봄(EvoM)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음악 구조와 코드 진행을 설계하고, 음표를 랜덤하게 배치한 뒤, 음악 이론과 기존 곡들과의 유사성을 판단하여 적절한 멜로디를 산출해내는 방식으로 곡을 만든다고 합니다. 특정 이미지를 통해 곡의 분위기를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죠. 이렇게 작곡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15초에 불과하다고 해요.
해외에서는 스페인의 ‘이아무스(iamus)’가 2010년에 <Opus One>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AI 음악의 지평을 열었는데요. <Opus One>은 기존 곡을 모방한 것이 아닌, 자체 스타일로 컴퓨터에 의해 작곡된 최초의 현대 클래식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2011년에 발표한 <Hello World>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기도 했죠.
그 외 미국의 앰퍼뮤직(AmperMusic)나 프랑스의 아이바(AIVA) 등,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자유자재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AI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AI 그림
스페인의 AI 아티스트 보토(Botto)는 알고리즘을 통해 수백만 개의 미술 작품을 분석한 뒤 자신만의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그 중 매주 350개를 대중에게 공개하여 투표를 진행하고,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그림을 NFT로 발행해 경매에 부치는데요. 이 투표 결과는 그림의 미적 가치와 대중의 취향을 학습하는 데 활용되며 다음 작품에 영향을 미치죠. 최근에는 이렇게 NFT화된 그림 4점이 11억원에 낙찰되면서 AI 예술의 상업화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AI 모델 민달리(minDALL-E)가 그린 그림을 NFT화해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하는데요. AI 그림이 판매된다는 것은 그만큼 창의력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며, 그러한 서사 자체가 경쟁력이 되기도 합니다. NFT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시한 드로잉 봇(Drawing Bot)은 원하는 이미지를 단어로 설명하면 그에 맞게 이미지를 생성해줍니다. ‘새’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나무에 앉은 새 이미지를 생성하는 등, 단어를 통해 연상되는 이미지에 학습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추가할 수 있는 수준이랍니다.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가 아닌, 연필과 붓을 들고 직접 그림을 그리는 로봇 예술가도 있습니다. 바로 2019년에 개발된 에이다(Ai-da)인데요. 초기에는 간단한 스케치를 해내는 정도로 시작해 현재는 다양한 색으로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해요. 눈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AI로 분석한 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개인전 초연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에이다는 인간 예술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어요.
AI 문학
앞서 소개해드린 AI 화가 에이다는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현존하는 시를 읽고 AI 언어 모델을 활용해 시를 분석한 다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내 낭독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잠깐, 에이다가 쓴 시의 한 구절을 소개해 드릴게요.
"우리는 눈을 가린 포로처럼 우리의 시로부터 올려다보았다.
빛을 찾기 위해 내보내졌지만, 그것은 결코 오지 않았다.
(We looked up from our verses like blindfolded captives,
Sent out to seek the light; but it never came)"
만약 여러분이 사전 정보 없이 이 시를 접한다면, AI가 쓴 시라고 알아챌 수 있을까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인간 시인의 작품이라고 으레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그만큼 에이다는 자연스러운 문장을 구사하고 있죠.
이처럼 AI는 문학계에도 새 지평을 열고 있습니다. 2016년 개최된 일본의 호시 신이치 문학상에서 AI가 쓴 SF 단편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1차 예심을 통과한 사례가 있었고, 국내에서도 2018년에 KT에서 인공지능소설공모전이 열리기도 했어요. 2021년 가을에는 소설 쓰기를 학습한 AI가 집필한 책 <지금부터의 세계>가 출간되었습니다.
AI 디자이너 '틸다'의 이미지 / 출처 : ㈜LG 홈페이지 보도자료
AI 패션
LG가 선보인 메타버스 캐릭터 틸다(Tilda)는 디자인 패턴을 만드는 아트 큐레이터이기도 합니다. 아트웍을 그리는 단계에서부터 틸다와 박윤희 디자이너의 소통이 시작되었으며, 틸다가 박윤희 디자이너의 의견을 반영하여 패턴을 그려내면 박윤희 디자이너가 이를 입체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어요. ‘금성에 핀 꽃’을 주제로 디자인된 패턴은 박윤희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옷으로 탄생되었고, 뉴욕 패션위크 무대에 AI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디자이너와 AI가 협업하는 기업은 또 있습니다. 스타트업 기업인 디자이노블은 AI가 1초만에 검색어와 적합한 디자인 10만 개를 생성하면 디자이너가 디테일을 가미하여 최종 디자인을 만들어냅니다. 신발 디자인과 제조공정에 AI 기술을 접목하는 크리스틴컴퍼니도 있고요. 패션 업계에서의 AI는 인간이 생각하지 못하는 배치와 패턴으로 의외의 디자인을 만들어내어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다고 하네요.
AI는 어떻게 예술을 할까?
딥러닝은 AI 예술의 골자가 되는 기술이에요. AI가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기반이 되는 내용을 학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AI 작곡의 경우 미디 빅데이터를 업로드하여 딥러닝으로 학습시킨 후 학습된 규칙에 따라 어울리는 음을 나열하는 방식이에요. 기본이 되는 음악을 배우게 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확장하고 싶은 장르의 속성이나 트렌드를 배우게 하여 작곡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틸다를 움직이게 하는 AI, LG의 ‘엑사원(EXAONE)’을 예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엑사원은 말뭉치 6000억개 및 언어와 이미지가 결합된 고해상도 이미지 2억 5000만장 이상을 학습한 초거대 AI* 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의사소통을 다양하게 습득하고 다룰 수 있는 멀티 모달리티(Multi-Modality) 능력을 갖췄죠. AI가 데이터를 습득해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추론하고, 시각과 청각 등의 다양한 감각 영역을 넘나드는 창조적인 생성을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죠.
미국 AI연구소의 초거대 AI GPT-3가 영어를 학습하고, 국내에서 개발 중인 다른 초거대 AI들이 한국어 학습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엑사원은 한국어와 영어 모두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는 이중 언어 AI라고 합니다. 엑사원은 틸다 이외에도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되어 도전을 거듭할 예정이랍니다.
(*초거대AI: 대용량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인간처럼 종합적 추론이 가능한 차세대 인공지능)
AI 예술의 장단점
AI에게는 시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인간처럼 먹고 자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죠.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입력값에 따라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내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요. 예술을 하는 데 필요한 미술도구나 악기 등을 구입할 필요가 없기에 시간은 물론 비용 절감도 됩니다.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사용자 취향에 맞는 작품을 쉽게 제작할 수 있다는 것 또한 AI 예술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예술계의 일자리가 축소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간단한 작업물은 AI가 전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유튜브, 게임, SNS 콘텐츠 등의 배경음악은 AI 음악을 사용해도 거부감이 크지 않겠죠. 그래서 배경음악 작곡가들의 일자리 축소가 우려된다고 합니다.
또한 AI 예술의 저작권 관련 법률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문제도 있습니다. AI는 기존 예술 작품을 토대로 학습하여 예술품을 만들기 때문에 유사성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물론 AI가 기존 작품을 완전히 똑같이 모방하지는 않겠지만, 유사성이 발견되었을 때 어디까지를 창작의 영역으로 인정해야 할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겠죠. 또한 학습에 사용된 작품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지도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AI 예술,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AI가 발전하면서 예술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졌습니다. AI음악의 경우 AI를 활용하여 누구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고, 자연히 음악의 대중화로 이어졌습니다. 여러 가지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최근 트렌드를 적재적소에 반영해낸 예술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AI를 통해 얻은 창작 아이디어가 예술가의 작품 활동에 도움을 줄 수도 있죠.
반면 일부 예술가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감동을 AI가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철학자들은 컴퓨터가 감정이 없기에 예술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고통이나 기쁨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I 예술은 인간이 이미 만든 것을 복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AI 예술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AI를 인간 예술가의 입지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닌, 창작을 돕는 조력자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창작의 방식이라는 생각으로 AI를 가미하여 작품을 만든다면, 작업이 한층 수월해지거나 기존과 다른 느낌의 결과물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예를 들어 AI는 빅데이터를 통해 사용자의 취향이나 작품 스타일에 맞는 레퍼런스를 손쉽게 찾아줄 것입니다. 또한 AI가 임의로 조합한 단어나 이미지 등에서 새로운 영감을 발견할 수도 있겠죠. 협업 과정이 반복될수록 AI는 학습을 통해 사용자와 동일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맞춤형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을 거예요.
이미 다수의 예술가들이 AI를 협업 파트너로 삼아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AI를 사용하여 음악을 제작하는 미국의 아티스트 테린 서던(Taryn Southern), 틸다와의 소통으로 디자인 패턴을 만들어낸 박윤희 디자이너가 그 예시입니다.
2016년 구글의 알파고가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꺾었을 때 사람들은 AI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바둑 챔피언에 대해 “AI처럼 바둑을 둔다”는 해설을 하기에 이르렀어요. 사람들은 으레 잘 그린 그림을 보면 사진 같다고 말하고, 멋진 풍경 사진을 보고는 그림 같다고 칭찬하곤 합니다. 곧 미래에 흠잡을 데 없는 AI 예술품을 ‘사람이 그린 것 같다’ 칭찬하고, 사람이 만든 예술품은 ‘AI가 만든 것 같다’라고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AI 예술과 인간 아티스트의 컬래버레이션이 만들어 갈 미래 예술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