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은 모두 물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생체의 주요한 성분이 물이기도 하고요. 생명현상 자체가 물에 녹아 있는 다양한 물질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오염된 물을 마시거나 가뭄 때문에 죽는 사람이 훨씬 많을 정도로,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물이 중요한 것은 비단 생명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4차 산업 혁명을 이끄는 핵심부품, 반도체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데요. 반도체를 비롯하여 디스플레이 부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도 물이 중요한 역할을 도맡고 있습니다. 바로 불순물 0에 도전하는 물, 초순수가 그 주인공이죠. 작은 크기의 반도체가 온전히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초순수의 비밀에 대해 파헤쳐봅니다.
반도체 공정 중 물의 역할
초순수는 Ultrapure Water(UPW), 직역하면 극도로 순수한 물입니다. 여러 차례의 정수 과정을 거쳐 이물질을 모두 제거한 물이 바로 초순수예요. 물 속에 있는 불순물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전처리 공정-순수처리 공정-초순수처리 공정을 거치는데요. 반도체 제작에 쓰인 초순수는 이후 재이용 및 후처리 공정으로 다시 초순수가 되어 다양한 분야에 사용됩니다.
순수(Pure Water)의 사전적인 의미는 불순물을 포함하지 않는, H2O로만 구성되어 있는 물이지만, 이론적으로 완전한 순수의 생산은 어렵기 때문에 불순물이 극히 적은 물이라는 의미에 더욱 가깝죠. 초순수는 순수보다 불순물이 극히 더 적은 물입니다. 순수처리 공정에서는 역삼투와 이온 교환 장치로 유기물과 무기 이온을 제거하고 탈기 장치로 물에 녹아 있는 기체를 없앱니다. 초순수처리 공정에서는 자외선을 통한 살균ㆍ산화와 이온 교환 작업을 거친 다음 한외여과 장치로 미립자와 박테리아를 제거하면 초순수가 되는 것입니다. 한외여과는 세균보다도 작은 입자 크기의 바이러스나 단백질 등의 특정 물질을 걸러내는 여과 방법으로, 최대 2nm(나노미터)까지 걸러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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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의 정확도를 높이는 생명수
반도체를 만드는 데 있어 이렇게 여러 차례 정화한 물을 써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온입니다. 이온은 전하를 띠는 원자 또는 원자단을 말하는데요. 물 속에 이온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전기가 흐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도체에 고장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죠. 스마트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물에 빠뜨리면 고장이 나는 이유도 이 전하 때문인데요. 나트륨이온과 염화이온이 첨가된 바닷물에 전자기기를 빠뜨렸을 때 더욱 고장이 잘 나는 걸 생각해보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반도체는 나노미터 단위의 세밀한 공정을 요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불순물도 고장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전도성이 없는 초순수가 웨이퍼 생산 공정 중에 발생하는 부스러기와 오염물을 씻어주면 고장 없이 원활한 공정을 할 수 있죠. 식각공정*을 할 때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희석하는 데도, 공정 가스를 정화하거나 클린룸의 온ㆍ습도를 조절할 때도 활용됩니다. 반도체에 이온을 주입하고 남은 이온을 씻어낼 때도 초순수를 사용하는데요. 순수한 반도체는 규소로 되어 있어 전기가 통하지 않아 따로 이온을 넣어서 전류를 흐르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각공정 : 약물을 써서 유리 또는 금속에 조각하는 작업
이렇게 정제된 초순수를 마실 수도 있을까요? 초순수는 칼슘, 마그네슘과 같이 사람에게 필요한 성분까지 제거되어 있어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게다가 몸 속에 있는 미네랄을 끌어내고 중요한 전해질을 잃게 만들어 설사와 같은 증상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몸 속으로 들어오면서 침, 위액, 소화액 등의 물질들과 섞이기에 장 내에 도달했을 때는 완전한 초순수의 상태가 아니게 됩니다. 따라서 많은 양을 마시지만 않으면 인체에 크게 지장은 없다고 해요.
초순수가 곧 국력? 세계는 지금 초순수 확보 플랜 진행 중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6인치 웨이퍼 1장당 1.5톤의 초순수가 필요합니다. 반도체는 전기전자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품인 만큼 생산량이 많아, 한 해 동안 소비되는 초순수 역시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양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분야 선진국가인 미국과 일본에서 초순수를 수입하여 사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자 정부와 민간이 주도하여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2030년까지 510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한국형 반도체 전략’을 발표한 것이죠.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과 관련 업계는 2025년까지 초순수 생산 장치 전반의 국산화를 연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관련 생산 공정의 설계와 운영 기술의 100%를, 시공 시술과 핵심 기자재의 60%를 국산화하는 것이 목표죠. 초순수 생산 기술과 관련 산업 육성 방안을 도모하기 위한 한국초순수학회가 활발한 연구와 토론을 거듭하며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반도체 설비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관세청에서는 초순수 공급장치의 사후관리를 생략하기로 했습니다. 사후관리는 수입자가 특정 용도에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은 수입 물품에 대해 일정 기간 동안 관련 의무를 부담하면서 세관의 관리를 받는 제도예요. 관련 업체들은 기본 관세율 3%을 적용받지 않고 초순수 공급 장치를 수입하는 대신 최대 3년간 관세청의 사후관리를 받아야 했는데요. 올해 3월부터 초순수 공급장치에 대한 사후관리가 생략되어 복잡한 관리ㆍ신고 절차와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세율과 사후관리에 대한 부담을 모두 덜어낸 만큼 초순수 공급장치가 국내에 활성화되는 날도 곧 현실로 다가올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세계 인구와 경제활동의 증가로 물 부족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죠. 우리나라도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가뭄이 장기화되고 있고요. 초순수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대용량의 물을 수급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관련 업계에서는 하수처리수와 냉각수를 정화하여 재이용하거나 물을 쓰지 않는 스크러버*를 개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점차 가까워져 오는 자원 고갈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LG이노텍 또한 글로벌 No.1 소재ㆍ부품 기업의 사명을 가지고 오래도록 순환이 가능한 방향으로의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기술과 자연의 균형을 잃지 않는 혁신 기술로 고객가치를 드높이는 기업이 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스크러버(Scrubber) :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를 정화하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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