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한 그림이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우승작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이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생성형 AI ‘미드저니(Midjourney)’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것이죠. 이 사실이 알려지자 AI 프로그램을 사용한 출품작을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AI가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요.
이쯤 되니 생성형 AI가 진화하면서 인간들이 일자리를 빼앗기는 사태가 더욱 늘어나게 될까 하는 우려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이 창출되는 일자리도 있기 마련이죠. 바로 고도화된 생성형 AI를 똑똑하게 이용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직업입니다. ‘AI 조련사’, ‘AI 위스퍼러(Whisperer)’라고도 불리는 이 직업은 어떤 일을 할까요? 빠르게 변하는 4차 산업 혁명 속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전망은 어떨까요? 알고 보면 더욱 흥미로운 직업,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원하는 결과물을 오차 없이 정확하게, 프롬프트 엔지니어
먼저 프롬프트(prompt)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프롬프트는 컴퓨터 시스템에 작업을 하도록 지시하는 메시지입니다. 인터넷에서 궁금한 것을 찾아볼 때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여 검색하듯, 생성형 AI에게도 일정한 명령어를 전달하여 결과값을 도출하는데요. 이 프롬프트의 내용에 따라 생성형 AI가 내놓는 결과물의 품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A) “공부하는 아이”
B) “양장본으로 된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 옆 책상에서 미간을 찌푸린 채로 연필 끝을 깨물며 공부하고 있는 남자아이”
이 두 가지의 명령을 생성형 AI 모델 ‘비 에디트(B^ EDIT)’에 입력해보았습니다. 어떤 명령어가 더욱 정확한 결과물을 내놓을까요? 당연히 가구의 배치, 인물의 표정ㆍ행동ㆍ성별까지 제시한 명령어 B가 더욱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놓을 것입니다. 이처럼 명확한 결과물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프롬프트를 간단한 검색어로 정립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하죠. 섬세하게 짜인 프롬프트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프롬프트를 판매하는 경우가 생겨나기도 하고요. 생성형 AI에 입력하는 명령어를 사고파는 프롬프트 마켓, 프롬프트베이스(PromptBase)에서는 2021년 이후 2만 5천 명 이상이 프롬프트를 사고 팔았다고 하죠.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폭넓습니다. AI와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심리 분석 작업도 함께 요하기 때문인데요. 생성형 AI 모델이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프롬프트를 미세하게 다듬는 것은 물론, 프롬프트의 종류에 따라 AI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파악하여 분류하는 것도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역할이랍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있다면 작업하는 시간은 절감하고 품질은 높일 수 있는데요. 생성형 AI가 안전규칙을 준수하는지, 이용자와 잘 상호작용하는지 테스트하는 것 또한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하는 일입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필요한 이유
챗GPT를 체험해본 몇몇 이용자들은 말합니다. 그저 그런 그럴싸한 단어들로 조합한 문장들에 지나지 않는 것 같고, 사실 여부를 파악해보면 잘못된 정보일 때가 많다고 말이죠. 비교적 최근의 데이터를 반영하지 못하여 생기는 오류일 가능성도 있지만, 더욱 정확한 답변을 얻기 위해 명령어를 세밀하게 다듬는다면 보다 더 정확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이용자의 생각과 활용 방식에 따라 결과값이 달라지는 것이 생성형 AI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프롬프트 마켓의 구매자들은 판매자가 제시한 그림 등의 예술 작품을 보고, 본인의 작품에 적용할 수 있는 단어 목록을 구매합니다. 원하는 것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요.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어휘의 변화에 따라 결과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충분히 연구해왔기에 구매자들이 프롬프트를 보다 구체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항간에는 고의로 엉뚱한 질문을 입력하여 얻어낸 기상천외한 답변을 밈(meme)으로 만드는 이용자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올바르지 않은 데이터를 입력하면 올바르지 않은 결과값이 나온다는 것을 쓰레기에 비유하여 GIGO(Garbage in Garbage Out)라 표현하기도 해요. 논리 프로세스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 컴퓨터의 특성이기에 GIGO는 당연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죠. 사실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분별력과 경험을 겸비한 전문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앞으로도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답변을 텍스트와 그림으로 도출하는 생성형 AI를 필두로 영상ㆍ웹사이트 모니터링ㆍ음성 등을 구현해내는 모델 또한 등장했으며, 이러한 생성형 AI는 머신러닝을 통해 더욱 복잡하고 세밀한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는 방향으로 거듭 발전할 테니까요. 오픈AI에서 올해 상반기 공개 예정인 GPT-4.0은 글자와 이미지뿐만 아니라 영상이나 음성, 동작까지 인식할 수 있는 단계로도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데요. 이에 따라 글자를 비롯하여 사진, 영상, 음악 등의 분야별로 맞춤형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등장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이미 일부 콘텐츠 제작 업계에서는 오디오, 비디오, 코드를 AI로 생산하여 콘텐츠 제작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고요. 의료 업계에서는 치아의 인조 보철물(크라운)을 자동으로 디자인하는 생성형 AI가 활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한 프레임이라도 어긋나면 집중도가 바로 저하되는 영상 콘텐츠, 한 치의 오차라도 나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인체 모형 등을 생성형 AI로 완벽하게 구현해내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야겠죠.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향후 전망
구글이 투자한 한 스타트업에서는 프롬프트 엔지니어 구인 공고에 연봉을 33만 5,000달러(한화 약 4억 3,000만 원)으로 기재했습니다. 이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라는 직업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노련한 경력을 가진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연봉으로 30~40만 달러를 제안 받는 것이 흔한 일이라고 해요.
프로그램을 움직이게 하는 명령어를 구성하는 것이니 코딩 능력을 겸비해야 하지 않을까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코딩에 익숙하지 않은 문과생들 또한 지원할 수 있는 채용 공고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는 코딩이 아닌 텍스트로 작성된 명령을 AI로 보내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코딩 실력보다는 작문을 얼마나 정확하고 세밀하게 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직군이라는 뜻이죠. 테슬라의 전 AI 책임자인 안트레이 카파시도 트위터에 ‘가장 있기 있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는 영어’라는 글을 게재할 정도로, 텍스트 다루기에 능숙한 이들이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환영받고 있는데요.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창의력을 토대로 텍스트를 풀어낼 수 있다면 더 좋은 결과물을 구현할 수 있겠죠.
미국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라일리 굿 사이드는 이 직업을 ‘인간과 기계의 마음이 만나는 장소에서 소통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추론할 수 있고 기계가 따를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이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죠.
하지만 프롬프트 엔지니어의 역할이 전문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모두가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 될 것이고, 그렇기에 직업 자체의 생명력은 길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업무와 함께 기획자나 QA 엔지니어의 역할을 멀티로 수행하는 형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따라 관련 역량을 차차 키워 둔다면 핵심 인재로서 오래도록 커리어를 쌓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지향하고 있거나 임하고 있는 업무의 방향을 스마트한 흐름에 맞게 수정해 나갈 것인지, 4차 산업 혁명을 주도하는 유망 직종으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해 차근차근 고민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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