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계에는 유명한 커플이 여럿 있고, 그 중 요즘 제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건 단연 ‘김원효-심진화’ 커플이다. KBS 2TV 프로그램인 <가족의 품격 풀하우스>라는 방송부터 지난 6월 29일 성황리에 마친 김원효 주연, 심진화 극본의 연극 <대박포차>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는 개그맨 부부인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연극 연습이 한창인 대학로에 위치한 ‘달빛극장’을 찾았다.
작고 아담한 소극장, 100석도 채 안되어 보이는 객석과 관객이 발을 뻗으면 배우들이 발에 걸려 넘어질 것만 같이 가까운 무대. 요즘 젊은 블로거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대박포차>의 무대다. 유명 개그맨인 김원효가 주연으로 나오는 연극이라 규모가 꽤 클 것이라 예상했건만, 의외로 소박한 무대와 객석크기는 괜시리 그와 이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인 것마냥 마음의 거리도 좁혀준다. 얼마쯤 지났을까, 생각보다 훨씬 훤칠하게 잘생긴 김원효와 그 뒤를 쫓아 아담한 심진화가 무대로 올라왔다. 서로 꼭 붙어 나란히 기대어 앉아 질문을 기다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부부다.
Q : 이번 공연에 대해 스스로 평가해보신다면?
김원효 그냥 딱 지금 나와있는 평점만큼 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심진화 우리 평 되게 좋은데? 우리 스스로 평가하자면 잘 되는 것 같은데 연극이다보니 매 회 배우컨디션이나 그날 그날 관객들로 달라지는 특성상 매번 최상의 공연이 될 수 없다는 게 아쉬워요.
Q: 가족사업인 이 공연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되셨나요?
김원효 예전부터 꿈이 있었어요.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게 꿈이었고, 그 꿈보다는 먼저 방송을 접하게 되어서… 대학로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붙어있는 포스터에 제 이름이 들어가 있는게 꿈이었어요. 방송을 하고 늦게 공연을 하게 되었네요.
대박포차가 된 계기가… 제가 술을 좋아하니까 영등포에 포장마차를 자주 가요. 소주를 한잔 하다보면 저도 고민거리가 있어서 가지만 연예인인 저 뿐만 아니라 그 좁은 공간에 의사도, 학생도, 회사원도 다양하게 계시고 그 얘기들을 듣고 있다 보면 재미있더라구요. 그래서 한번 개그로든 뭐든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시발점이었죠. 스토리도 있고, 재미있는 연극이 하고 싶었어요.
심진화 그게 결론적으로 가족 사업이 된 거에요. 저희 직업특성상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이 안되기 때문에 노후라든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일환이라고 봐야죠?
연극이 오랜 꿈이었다는 부부는 자신들이 연기하고 극을 짠 ‘대박포차’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였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부부의 답변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질문에 고민하고, 성심 성의껏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들은 유명한 이름을 앞세워 관객을 끌고자 하는 연극이 아니라, 정말로 꿈을 위해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Q: 사실 ‘개그콘서트’의 개그맨이라고 하면 그래도 그 직업군 중엔 꽤 안정적인 위치일텐데, 왜 이런 험난한 사업에 뛰어들게 되셨나요?
김원효 처음엔 험난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평지에 내가 하나의 길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도전했는데 막상 하고 보니 힘이 들긴 하더라고요.
심진화 코너는 계속 할 수 있어요. 코너를 계속 짜는 것이 힘든 건데, 뇌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요. 거기에 몰두하다 보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지죠. 남편이 연기를 잘하기 때문에 예전부터 정극에 도전을 해보고 싶어하기도 했고요.
Q: 가끔은 평범한 일을 할 걸이라는 후회를 하시지 않으세요?
김원효 제 예전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물으셨을 때, 제 대답은 ‘평범한 사람’이 꿈이라고 대답했었어요. 평범하게 회사 다니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넌 제일 힘든걸 얘기하는구나. 라고 하셔서 그때는 몰랐죠. 그냥 남들처럼 군대 다니다가 회사 다니고, 여자 만나고, 결혼하고... 왜 힘들지? 했었어요.
근데 살아보니까 벌써 저는 연예인이 됐을 때부터 평범한 사람이 아닌 거에요. 그 이후의 삶도 평범하지 않고… 그 때부터 오히려 더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직업이 평범하지 않아서 다른 쪽으로 오히려 더 평범해지려고 해요.
심진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연기자, 그러니까 이쪽 말고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이걸 개그맨이 되고 슬럼프가 오고 이년 반정도 쉬게 되면서 수입이 끊겼을 때, 땅을 치고 후회했어요. 전 아르바이트를 굉장히 많이 했었거든요. 뭘 해도 잘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이 길을 택해서 험난한 삶을 살까. 생각했어요. 돈이 10원도 없어 지옥 같은 삶을 살았거든요. 그 때는 월급 받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더라구요.
김원효 제 주변에는 저보다 돈을 많이 버는 친구도 있고, 서울대를 나온 친구도 있지만 저는 가장 기분이 좋을 때가 ‘야, 너는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좋겠다.’ 라는 말을 들을 때에요.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김원효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고 있기에 오히려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어쩌면 조금 고달프게 느껴졌다.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눈을 비비며 ‘아이고. 눈이 침침해서 못 끼고 있겠다.’며 인터뷰장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김원효는 마치 재미있는 옆집 오빠 같았다. 이야기가 오갈수록 두 부부는 연예인이 아니라 그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Q: 크리에이티브가 굉장히 중요한 직업인데. 스스로 정체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있나요?
김원효 노력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계속 제 스스로 궁금해하려고 노력해요.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살도 빠지고… (웃음)
심진화 이게 남녀의 차이인 것 같은데. 결혼을 하고 나니까 저는 제 스스로를 위한 재정비보다는 이 사람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같아요. 남편이 지치지 않을까, 꾸준히 개그를 짜는 게 엄청 힘들거든요. 그래도 항상 저는 이 사람을 천상 개그맨이라고 해요. 개그를 짜는 것 자체를 너무 즐거워하고... 그래도 내가 부인으로서 뭔가 이 사람에게 끝까지 힘을 줘야겠다고 생각을 해요. 어떤 날은 하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거나…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불안함이 있거든요. 내 코너가 내려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그런 마음이요. 그럴 때 좌절하고 집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너무 고통스럽더라구요. 같이 좌절하면 안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요. 어쨌든 이건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해요. 이남자가 무너지면 저도 무너지는거니까.
Q: 김원효씨는 크게 왔다 갔다 하는 것 없었던 것 같아요.
김원효 하지만 알게 모르게 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방송하면서 신인상 타기 전에 아마추어 개그프로그램에서 확 잘됐다가 확 안됐다가. 신인상 타서 확 잘됐다가 또 확 안됐다가. 그러다 또 우수상 타고 또 안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심진화 사실 얼마 전에 나라에 큰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이 개그콘서트를 쉬면서 4월부터 2달 정도를 쉬고 있는데. 결혼하고서 이렇게 쉬는 적은 처음이거든요. 결혼 후 처음으로 데이트도 해보고, 밥도 같이 먹고… 리프레시 되는 것 같고 너무 좋아요.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그 중에서도 심진화는 단연 내조의 왕이었다. 양처라는 말은 심진화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는 자신보다 항상 김원효가 우선인 듯 했다. 심진화의 똑부러지는 대답을 들으며 시종일관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뭐, 인터뷰 준비해왔어?’ 하고 한마디 툭 던지며 너스레를 떠는 그의 말에 인터뷰장은 또 한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잉꼬부부로 소문난 둘. 대화에도 죽이 척척 맞는 부부의 모습은 정말이지 천생연분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Q: 두 분은 싸우면 어떻게 화해하세요?
심진화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실 남자들의 특성상 이 사람이 잘못해서 제가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듯 화를 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제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일단 우선 멈춰요. 서로 이득이 될 게 없거든요. 결혼 한 관계가 아니라면 따졌겠지만 결혼을 한 사이이니까요. 한번은 화를 심하게 내봤는데, 그게 저한테 역효과가 되더라고요. 그 모습을 지우기 위해 그 이후 아주 오랜 시간을 노력을 했었어요.
Q: 서로에 대해 냉정히 평가를 해보신다면 어떠세요?
심진화 평가를 하기가 힘든 것이, 닭살 돋게 말하려는게 아니라 서로가 뭔가를 할 때 마다 하나씩 모자라는 것이 있으면 서로서로 채워줬어요. 이 작품도 마찬가지이구요.
김원효 식당으로 따지면, 저는 고기를 썰고 이 사람은 야채를 씻고… 그런 것 같아요. 서로서로 돕는.
인터뷰 시간이 다 가도록 서로를 번갈아 가며 다정하게 쳐다보던 그들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훈훈하게 만들었다. 싱글로 살 거라고 다짐했던 나까지도 저렇게 살 수만 있다면 결혼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Q: 일반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힐링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김원효 뭔가를 자꾸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이요. 하루하루 내일이 오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생길 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연인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처럼 희망찬 앞날을 재미있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내일은 뭘 할까, 어떤 일이 생길까 궁금해하고.. 그게 참 필요한 것 같아요.
심진화 저는 살아오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제가 지금 서른 다섯인데, 최근 3년이 비로소 제 인생에 가장 행복한 날들이에요. 예전에 박신양씨가 하셨던 말씀이 있어요. 모든 사람은 힘들다고요. 그 말을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힘들 때 그 말로 저를 위로하고 격려했어요. 삶을 통틀어 고난을 100이라고 생각했을 때, 70이 젊을 때 몰아서 오는 사람도 있고, 인생 전반에 걸쳐 10씩 나눠서 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요즘 저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해요. 힘들다고 포기하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훗날 찾아올 행복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항상 재미있는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는 직업, 개그맨. 하지만 그 무대 아래에서 만난 그들은 의외로 진중한 모습으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인터뷰에 응해준 부부의 얘기가 사람들로 꽉 찬 강연에서 들었던 강의보다도 더 와닿았던 것 같은 느낌은 내 착각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하다는 김원효, 힘든 시간을 버티고 끝내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다고 말하던 심진화. 사람냄새 나는 그들의 앞으로의 행보 역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