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낙엽에 괜스레 마음이 쓸쓸해지는 계절, 거리로 나가 만추의 정취를 만끽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딜 가도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펼쳐지니 눈과 마음은 제자리를 헤매기 일쑤. 깊어가는 가을에 낭만을 즐기지 않는 자, 유죄! 지금부터 가을 따라, 그림 같은 길을 걸어보자.
| 재봉틀 소리에서 발자국 소리 가득한 곳으로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화동은 본래 동대문시장에 제품(커튼, 침구류, 의류 등)을 공급하던제조업이 활성화된 동네였다. 1970년대 소규모 봉제공장과 미싱공들의 주거지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였던 이 곳은 2006년 지역활성화 벽화 그리기 프로젝트인 ‘낙산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의 ‘이화동 벽화마을’이 되었다.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던 마을이 예술인들과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방문객들의 발자국 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가 가득한 예술마을로 탈바꿈한 것이다. 70여 명의 예술가가 100여 일에 걸쳐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하며 이화동은 예술마을로 변모했다.
마을은 변화했지만 결코 역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봉제공장들의 추억이 담긴 오래된 다리미와 미싱들을 전시한 봉제박물관 ‘수작’이나, 이화동 주택의 역사와 구조, 형태를 알 수 있도록 건물 사진 및 도면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개뿔’, 마을 주민들에게 기증받은 사진 등으로 이화동에 관한 추억이 담긴 자료를 전시하는 ’마을 박물관’등 이화동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들이 마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전시 공간이 벽화마을 나들이의 깊이를 더해줌은 말할 것도 없다.
| 이, 꽃(花)보다 아름다운 마을!
동네 곳곳에는 이름처럼 벽화가 가득하다. 갈라진 골목 틈새엔 사시사철 지지 않는 꽃들이 피었고 가파른 계단에는 잉어가 뛰어 논다. 그 옛날 한숨부터 불러일으켰을 법한 가파른 계단도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멋진 벽화(?)로 변신했다. 계량기는 무당벌레의 옷을 입었고 잿빛이었던 시멘트 벽은 날개를 달고 필수 기념 촬영의 명소가 되었다.
낙산공원과 이어진 이화동은 서울 전경이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꼽히기도 한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미술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림과 풍경이 한 몸 같다. 건축가 승효상은 ‘이화동은 서울이다’라고 말했다. 평범한 골목, 낡은 창문 틀에서 발견되는 도시의 진정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화마을에는 *적산가옥이 가진 역사, 쉬지 않고 재봉틀을 돌리던 서울 달동네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배어 있다. 마을은 재개발이라는 위기 앞에 풍전등화 같았던 시기를 공공예술을 통해 잘 극복했고 도시 안에서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다.
*적산가옥이란? 적의 재산이라는 의미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 소유의 재산 중 주택을 지칭.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나, 한때 이화동에 거주한 적 있는 소설가 김훈 또한 자신의 저서 <자전거 여행>에서 말했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깊어가는 가을, 이화벽화마을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미술과 역사, 도시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