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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행] 골목 깊은 대구路

 

 

이번 달<역사기행>에서는 근대 역사와 문화를 떠올리기에 제격인 대구를 찾았다. 대구는 한국전쟁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적었다. 덕분에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구의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근대문화골목은 1.64㎞의 짧은 코스이지만 볼거리가 많아 지난 한 해만 20만명이 찾았을 정도로 인기 있는 거리다. 청라언덕에서 선교사주택,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민족시인 이상화와 민족운동가 서상돈의 고택, 근대문화체험관인 계산예가, 뽕나무 골목, 옛 대구의 종로, 대구화교협회, 시간이 멈춘 듯한 진골목까지 이어진다.

 

 

 

 

 

 

투어의 시작
청라언덕

 

투어의 시작은 청라언덕이다. 푸를 ‘청()’과 담쟁이 ‘라()’ 즉, 푸른 담쟁이넝쿨이 휘감겨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대구의 몽마르트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데, 계산성당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예술가들의 혼이 느껴지는 공간들(작곡가 박태준의 대표곡 동무생각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도 주변에 위치해 있어 몽마르트라는 애칭이 매우 잘 어울리는 곳이다. 언덕 위에는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물 세 채가 있다. 1900년 초 미국 선교사들의 사택으로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기도 하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서상돈, 김종학, 정규옥 등 초기 대구 천주교 신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언덕 끝에는 계산성당을 바라보며 내려가는 3∙1운동길이 있다. 푸른 담쟁이넝쿨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이 길은 1919년 1,000여 명의 학생들이 독립 만세를 외치던 길이다. 90계단으로도 불리는 3∙1운동길을 따라 내려가면 바로 계산성당이 있다. 프랑스 선교사가 설계한 이 성당은 서울, 평양에 이은 한반도 내 세 번째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대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00년대 초기 건축물로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지난 해 흥행한 영화, <검은사제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정소아과의원’은 현존하는 대구 최고(最古)의 양옥건물이다. 낡은 간판은 세월이 흘러 모서리에는 녹이 슬었지만 그 속의 글씨만은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다.

 

성당 바로 옆에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민족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펼친 서상돈의 고택이 위치해 있다. 고택을 나와 중앙시네마 옆길로 새면 100m 남짓한 작은 골목길, 진골목이 나온다. ‘긴 골목’이라는 뜻으로 ‘길다’를 ‘질다’로 발음하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유례했다. 언뜻 볼품없어 보이는 길이지만 사실 이 골목은 근대 초기 대구의 유지였던 달성 서씨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유명했다.

 

 

 

역사,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

 

 

진골목의 끝, 근대문화골목 끝에는 대구화교협회가 있다. 대구화교협회는 1929년에 지어진 서양식 붉은 벽돌건물로 대구 지역 부호인 서병국의 주택으로 지었다가 현재 대구화교 협회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좌우 대칭형의 현관과 반원형 아치로 된 정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엄동도 지나고 어느덧 춘삼월이 코앞이다. 우리의 ‘들’을 되찾기 위한 선조들의 함성이 없었다면 이토록 따뜻한 봄을 만끽할 수 있었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 있다. 올 봄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대구 골목길을 걸으며 과거를 통해 현재, 나아가 미래까지 내다보는 대화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