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클라우드에는 얼마나 많은 데이터들이 저장되어 있나요? 그 동안 SNS에 게시한 글이나 사진, 영상은 몇 개인가요? 누구든지 자유롭게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를 게시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이후로 전세계의 데이터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의 전세계 데이터 생산량은 80ZB(제타 바이트, Zetta Byte) 정도이며, 2025년이 되면 무려 175ZB에 다다를 것이라고 하죠. ZB는10의 21제곱(1021) 바이트를 의미하는데요. 이는 1TB 하드디스크 10억 개에 해당하는 용량입니다. 175ZB면 1TB 하드디스크 1,750억 개에 이르는 셈이에요.
이렇게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의 연산 능력도 높아져야 합니다. ‘데이터 전쟁’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데이터 강자들에게 주도권이 주어지는 시대, 승전고를 울릴 수 있는 수단으로 미래형 첨단 컴퓨터인 양자컴퓨터가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구글은 2019년에 발표한 53큐비트 양자컴퓨터 칩이 기존 슈퍼컴퓨터로 푸는 데 1만년 정도가 걸리는 과제를 약 200초만에 풀 수 있다고 말했는데요. 디지털을 넘어 양자시대로 접어드는 컴퓨터는 얼마나 빠르고 정확할까요? 양자컴퓨터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꿈의 컴퓨터라고 불리는 양자컴퓨터란 무엇일까?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을 활용해 연산을 수행하는 컴퓨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양자역학이 무엇이기에 컴퓨터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양자컴퓨터의 작동 원리를 알아보기에 앞서 양자와 양자역학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양자(Quantum)는 일반적으로 '물리적 속성의 최소량'이라고 정의됩니다. 여기서 물리적 속성이란 길이, 시간, 질량, 온도, 밝기 등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속성을 의미하는데요. 양자는 이러한 물리적 속성의 양(물리량)을 최소 단위로 나눈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빛의 단일 양자는 '광자(photon)'라는 에너지 덩어리이죠.
그런데 '양자'라는 단어는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어요. 위에서 광자를 '에너지 덩어리'로 표현했지만 이는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이며, 양자는 명확하게 어떤 물질이나 현상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그저 '최소량'이라는 개념일 뿐이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양자가 무엇인지는 '양자화'나 '양자역학'과 함께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자화는 물리량이 최소 단위로 나눠지면서 불연속적인 값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해요. 불연속적이라는 건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고전역학에서는 물리량을 연속적인 것으로 여겼는데요, 온도를 예로 들자면 1℃와 10℃ 사이에는 1.0000(…)1℃부터 9.9999(…)9℃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양자는 고전역학의 기존 관념을 깨뜨렸습니다. 양자화된 물리량은 띄엄띄엄하면서 정수배로만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죠. 즉, 1,2,3(…)10℃의 값은 가질 수 있지만 1.5℃, 5.75℃등의 값은 가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양자의 세계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거시세계와는 다른 원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였어요.
양자역학은 이처럼 양자화된 영역, 즉 아주 작은 단위의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과 컴퓨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바로 전자에 열쇠가 있습니다.
물질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입자인 ‘원자’로 이루어졌고, 원자 내부에는 양(+)전하를 가진 원자핵과 음(-)전하를 가진 전자가 존재합니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인력 때문에 전자들이 원자핵의 주변을 도는 형태를 띠게 되는데요. 물리량의 변화는 이 전자의 위치가 바뀔 때 에너지를 방출하거나 흡수하면서 생기는 결과입니다. 양자화된 물리량이 띄엄띄엄 나타나는 이유는 전자가 원자 내에서 불연속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이죠.
위 이미지는 1913년에 도입된 보어*의 원자 모형을 나타낸 것인데요. 보어는 전자가 원자 내에서 정해진 궤도로만 회전한다고 가정했습니다. 이 궤도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기에 전자의 이동도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자가 가장 안쪽 궤도에서 다음 궤도로 옮겨갈 때, 어떤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이동을 하듯 나타난다고 설명했어요. 이를 양자도약(Quantum Jump)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보어는 이러한 양자도약이 어떻게 가능한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보어: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
후에 전자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양자역학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즉, 전자는 단일 입자로 존재할 수도, 원자핵 둘레에 파동으로 퍼져 있을 수도 있죠. 이는 다시 말해 전자가 원자 내에서 다양한 위치와 운동량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지만 그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죠. 심지어 입자와 파동 중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그래서 현재의 양자역학적 원자 모형은 원자핵 주위로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확률 분포’를 나타내는 방향으로 수정됩니다.
양자컴퓨터는 이처럼 입자이면서 파동인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의 원리와, 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구현합니다. 본격적으로 양자컴퓨터의 원리를 살펴볼까요?
양자컴퓨터가 유달리 빠른 이유
양자컴퓨터나 양자 정보의 기본 단위를 큐비트(Qubit) 또는 양자 비트(Quantum bit)라고 합니다. 기존 디지털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비트는 0과 1 중 하나의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는데요. 큐비트는 0과 1의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습니다. 비트가 0의 경우와 1의 경우를 순차적으로 실행해보고 이를 비교한다면, 큐비트는 0과 1이 중첩된 상태로 동시에 계산하여 한 번에 모든 답을 도출하는 것은 물론 최적의 답까지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자컴퓨터는 1980년대 초에 리처드 파인만이 처음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데이비드 도이치가 1985년에 양자역학의 원리를 따르는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을 수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기초 이론을 정립했죠.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994년, 피터 쇼어가 큰 수의 인수분해가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개발해냈고, 그 이후로 양자컴퓨터는 전세계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양자의 병렬성 덕분에 양자컴퓨터가 인류의 난제에 대한 해답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치료제, 지구온난화를 막는 새로운 분자의 특성, 그리고 광활한 우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까지 초월적인 속도로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양자컴퓨터는 의료 분야에서도 활약하여 생명 연장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데요. 수조 개에 달하는 인체 내 세포와 단백질, DNA들을 슈퍼컴퓨터보다도 월등한 성능으로 분석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활용도를 자랑하는 만큼 양자컴퓨터가 신의 도구라는 수식어를 얻은 것도 과장은 아닌 듯싶은데요.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는 세계 양자컴퓨터 시장이 8억 200만달러(2019년)에서 28억 2200만 달러(2023년)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IBM Q 시스템 원 / 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스
위 이미지는 IBM에서 개발한 최초의 회로 기반 상용 양자 컴퓨터 ‘IBM Q 시스템 원’의 사진입니다. IBM Q 시스템 원은 2.7m x 2.7m x 2.7m 크기의 유리 큐브 안에 구축되어 있는데요. 훗날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된다면 이 큰 기계들을 집에 들여놓아야만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그것은 아닙니다. 양자컴퓨터의 서버는 다른 곳에 두고, 우리가 그 양자컴퓨터에 접속해서 사용하는 형태가 될 거예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를 네트워크로 연결하여 양자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죠.
그리고 2021년 3월에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에서 서버랙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양자컴퓨터를, 4월에는 호주-독일 합작기업 퀀텀브릴리언스에서 PC사이즈만큼 소형화된 양자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스마트폰 사이즈로 줄어든 양자컴퓨터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양자컴퓨터의 시대는 올까?
양자컴퓨터는 AI기술을 한 단계 진보하게 만들어줄 기술입니다. 양자컴퓨터 운영체제인 양자 커널(Quantum Kernel)을 사용하여 구현한 양자 신경망(QNN) 덕분이죠. 기존 신경망에 양자이론을 적용하여 만든 AI신경망을 QNN이라고 하는데요. 양자컴퓨터의 데이터 중첩 처리 능력과, 기존 신경망 컴퓨터의 병렬 데이터 처리 방식을 동시에 사용하여 같은 시간에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는 딥러닝 모델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초거대 AI* 모델 또한 양자역학의 활용으로 완성되는 것이죠.
*초거대 AI : 기존 AI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차세대 AI. 대용량 데이터를 학습하여 인간처럼 종합적인 추론이 가능함.
양자컴퓨터의 등장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진보로도 이어집니다. 양자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AI가 초미세 공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인데요.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제작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 바로 금속을 플라즈마*로 증착*하는 스피터링 공정인데, 이때 원자 단위로 반도체 기판에 증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자컴퓨터 기반 AI가 있다면 지금보다 더 성능이 좋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초미세 공정을 거친 반도체들을 활용하여 더욱 차원 높은 양자컴퓨터를 구현해낼 수도 있겠죠. IBM의 전망에 따르면 2030년 즈음부터 양자컴퓨터로 수십조 달러의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해요.
*플라즈마 : 고온에서 전자와 이온으로 분리된 기체. 음과 양의 전하수가 거의 같아 중성을 띠고 있음.
*증착 : 진동 상태에서 금속이나 화합물을 가열ㆍ증발시켜 물체 표면에 증기를 얇은 막으로 입히는 일.
양자컴퓨터가 나아가야 할 길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하기까지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큐비트의 불안정성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요소인데요. 복잡한 연산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큐비트는 예민한 성질을 갖고 있기에 공기의 움직임이나 작은 잡음만 있어도 출력값이 다르게 나온다고 하죠. 영하 270도의 극저온 상태를 유지해야만 양자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글에서는 이러한 양자컴퓨터의 한계를 일정 부분 해소한 53큐비트 양자컴퓨팅 시스템 시커모어(Sycamore)를 공개했습니다. 양자컴퓨터 시스템만 극저온으로 설정하고 남은 장치들은 실온에서도 실행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죠.
한계점은 양자컴퓨터를 대규모로 구현해낼 때도 발생합니다. 크기가 커지는 것은 물론, 케이블 연결 거리도 길어지면서 신호 손실도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IBM에서는 최근 케이블로 일일이 연결하지 않아도 큐비트 속도를 올릴 수 있는 고속망을 구축한 양자컴퓨터 오스프리(Osprey)를 공개했답니다.
기술적인 한계점을 타파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었을 때의 문제점도 방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양자컴퓨터가 전세계의 보안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RSA* 알고리즘은 공인인증서나 OTP는 물론 비트코인 등 인터넷 전반에 활용되는 보안 기술인데요. 기존의 디지털 컴퓨터는 RSA 알고리즘으로 암호화된 내용을 풀기 위해서 1만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데, 양자컴퓨터를 사용하면 단 2분 만에 해독할 수 있다고 하죠.
*RSA : Rivest Shamir Adleman.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인터넷 암호화 및 인증시스템. 공개키와 개인키를 세트로 만들어 암호화와 복호화(부호화되기 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를 하는 방식.
양자컴퓨터로 보안의 벽이 허물어진다면 은행이나 전자상거래, 관공서 등에서 관리하는 개인정보는 물론 군사 정보의 보안까지도 안심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양자역학 기술을 활용한 양자암호통신을 개발하여 방어할 수 있어요. 양자암호통신은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 해독이 가능한 암호키를 만들어 해킹을 막는 기술입니다. 양자 암호의 암호키는 양자 복제 불가의 원리로 암호키를 복제할 수 없음은 물론, 설령 복제에 성공했다고 해도 양자 측정의 원리로 인해 양자 상태가 깨지는데요. 양자 상태가 변형된 것을 본 수신자는 정보를 폐기하여 해킹을 차단할 수 있게 됩니다.
오래 전부터 양자역학의 허점을 드러내기 위한 과학자들과 이에 반박하며 양자역학이 실재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과학자들 사이의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왔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가며 양자역학은 완전성을 더해가고 있죠. 이제는 양자 상태의 두 입자 중 하나를 관측하면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고, 그 입자와 얽혀 있는 다른 입자의 상태까지 결정된다는 양자얽힘 현상이 최근 실험을 통해 가능함으로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양자컴퓨터는 현존하는 인류들을 위기에서 벗어나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지구로 인도하는 퀀텀 점프*의 핵심적 키가 아닐까 싶은데요. 인류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을 넘어 희망찬 미래를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해낼 양자컴퓨터의 탄생이 기다려집니다.
*퀀텀점프(Quantum jump): 물리학 용어로, 양자세계에서 양자가 어떤 단계에서 다음단계로 갈 때 계단의 차이만큼 뛰어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말. 통상 단기간의 비약적 발전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됨.